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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가 말한 “학교가 필요하다면 이미 진 것이다”의 진짜 의미

일론 머스크가
“학교가 필요하다면 이미 진 것이다”
라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을 오만함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읽는다.

그 말은 아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부모와 어른을 향한 말일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시스템은
원래 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
‘관리 가능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구조였다.

그 안에서 아이는
질문하는 존재가 아니라
정답을 맞히는 존재가 되었고,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
평가받는 대상이 되었다.

머스크가 비판한 건
학교 그 자체가 아니라
배움을 외주화한 어른들의 태도다.

아이는 배우고, 부모는 멈춰 있는 사회

부모의 학습은
아이의 유년기와 닮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쫓아야 할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다.

기술, 사회, 가치, 노동의 방식까지
모든 것이 바뀌는데
부모만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면
그 부모는
아이의 환경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도태시킬 수도 있다.

아이의 학습 능력이 놀라운 것처럼
부모 역시
다시 아이가 되어
놀라운 학습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머스크가 말한
“AI가 교육을 바꿀 것이다”라는 말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AI는 아이를 대체하는 교사가 아니라,
부모가 다시 배우도록 강요하는 거울이다.

가르침보다 중요한 것: 함께 살아봄

아이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학원도,
더 이른 선행도 아니다.

필요한 건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다.

아이의 질문에
즉답을 주는 부모가 아니라,
“나도 모르겠다. 같이 알아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

그게 머스크식 교육관의 핵심이다.

교육은 제도가 아니라
태도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하지만

삶은 가치를 양산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남는다.

마치 물질파처럼,
소멸하지 않고
이 지구에,
이 우주에
잔향처럼 남는다.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동안
부모가 자신을 돌아본다면,
그 흔적은 아이의 사고방식이 되고
아이의 선택이 되고
아이의 삶이 된다.

그게 기적이다.

머스크가 교육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는 교육 제도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배움을 포기한 사회를 비판한 것이라고.

좀 난해한 말일까?
아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다만
우리가 너무 오래
잊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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