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앱을 만들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이거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람을 위로 스크롤하게 만들까?”
생년월일 입력 화면에서
끝없이 내려가야 하는 연도 리스트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입력이 아니라 체력 테스트 아닌가.
문제는 ‘정확함’이 아니라 ‘피로도’였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 생년월일은 정확해야 한다
- 그러니 연도는 1900년부터 전부 보여줘야 한다
논리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사람의 손가락과 눈은 논리가 아니라 피로에 반응한다.
특히 이 앱의 사용자들은
20대가 아니라
40대, 50대, 60대다.
이미 하루에
비밀번호, 인증번호, 문자, 앱 알림…
손가락은 충분히 많이 움직였다.
그들에게
“이제 1960년까지 스크롤하세요”라고 말하는 건
친절이 아니라 무심함이다.
그래서 연도의 시작점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는 디폴트 연도를 1986년으로 두는 걸 고민했다.
왜 1986년인가?
- 40대 → 1980년대 중후반
- 50대 → 1970년대
- 60대 → 1960년대
1986년은
위로도, 아래로도
손가락 몇 번이면 닿는 중간 언덕이다.
이건 단순한 숫자 변경이 아니다.
이건 메시지다.
“이 앱은 젊은 사람용이 아니라
지금의 당신을 위한 도구입니다.”
UX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우리는 자주 UX를
버튼 색깔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UX는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사용자가 맞춰야 할까,
우리가 맞춰야 할까?
연도 디폴트를 1986년으로 두는 결정은
작아 보이지만,
사실은 방향을 정하는 선택이다.
- 시스템 중심 → 모든 연도를 다 보여준다
- 사람 중심 →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있는 곳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이 앱이 가고 있는 방향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시니어 건강노트’다.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 부르고 싶다.
기억이 흐릿해져도
손가락은 덜 움직이게 해주는 앱
우리는
정확한 시간보다 기억의 맥락을,
완벽한 입력보다 편안한 완료를,
기능보다 안심을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연도를 내리는 일은
사실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오늘도 코드 한 줄 줄이고,
사람의 한숨도 하나 줄이려고 한다.
이게 내가 만들고 싶은 앱이고,
이게 내가 남기고 싶은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