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이 친구들이 나를 보고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처음엔 웃어넘겼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아이와 나 사이엔
48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으니까.
나는 늦깎이다.
늦게 결혼했고,
늦게 아빠가 됐다.
그래서 요즘 내 삶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조용히 뜨겁다.
몸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또렷하다.
아이에게 이 세상이
즐거운 소풍이 될 수 있도록.
나는 보이지 않는 지원군이 되고 싶다.
요즘 세상은 고령화 사회다.
비혼도 많고, 늦은 결혼도 낯설지 않다.
그런 흐름 속에서
세대 간의 간격은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은 그 간격이 갈등으로,
사회적 이슈로 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 삶의 현장은 뉴스가 아니다.
우리 집 거실이고, 주말의 길 위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에,
가능한 한 주말마다 집을 떠나려고 노력해왔다.
낯선 곳이 주는 정서적 풍요로움.
그건 분명히 있다.
“어릴 때 여행을 많이 하면 좋다.”
그 말이 맞든 틀리든,
나는 그 말이 ‘사랑의 방향’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모든 부모의 마음은 하나일 거다.
아이에게 고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가능하면 꽃길만 걷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아이는 결국 자신의 길을 간다.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다.
그 아이의 길이
공동체를 생각하고,
지구를 생각하는 기본 심성을 바탕에 깔고 가는 길이길.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지만,
그 짧은 생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을 단련하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텃밭으로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괭이질을 하는 손을 가진 어른.
그런 사람으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늦깎이 아빠다.
늙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체력보다 방향이고,
정답보다 질문이며,
가르침보다 함께 걷는 시간이다.
오늘도 그런 마음을 조용히 꺼내어 적는다.
어쩌면 이 글은 아이에게 남기는 편지이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다.
“나는 늦게 왔지만, 끝까지 곁에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