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사람들을 위한 생각
1971년 4월 8일 새벽 3시쯤, 나는 태어났다.
그리고 오늘까지 살아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지금까지 몇 초를 살았을까?
계산해봤다.
약 19,988일.
약 17억 2천만 초.
17억 초.
숫자로 보면 엄청나 보인다.
하지만 솔직히, 체감은 잘 안 된다.
그냥 하루하루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17억 번의 “똑딱”이 지나간 거다.
17억 초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의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밥 먹고, 잠자고, 걷고, 앉아 있던 시간.
멍하니 창밖을 보던 시간.
누군가를 기다리던 시간.
그런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 쌓여서 17억 초가 됐다.
평범한 순간들이 쌓여서 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특별한 하루”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하루를 잘 보내려고 한다.
앞으로 17억 초가 더 있다면
54년을 더 산다면 108세.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숫자다.
하지만 10억 초는 어떨까? 그건 약 32년.
5억 초는? 약 16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 이 1초”는 확실히 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남긴다.
지금 이 순간의 생각을, 오늘의 고민을, 작은 발견들을.
언젠가 내가 없어도,
아이들이 이 기록을 보면서
“아, 아빠는 이렇게 생각했구나”를 알 수 있도록.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50대에 아빠가 됐다.
사람들은 가끔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늦었다.
객관적으로, 늦은 게 맞다.
하지만 “늦었으니까 안 된다”는 거짓이다.
17억 초를 살아온 사람은,
17억 번의 순간을 버텨낸 사람이다.
그 경험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게 지금부터의 무기가 된다.
느리지만 방향이 있으면,
속도는 덜 중요해진다.
오늘의 산책을 마치며
17억 초.
숫자로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냥 하루하루의 합이다.
앞으로 몇 초가 남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그러니까, 지금을 잘 보내자.
느리게 가도 괜찮다.
함께 걸으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