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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0이 된 이후의 삶

0에서 시작한 사람들에게

스티븐 호킹은 21살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2년을 선고했다.
그는 76세까지 살았다.

그가 남긴 말 중 이런 게 있다.

“21살에 내 기대는 0이 되었다.
그 이후의 모든 것은 보너스였다.”

💡 기대가 0이 되면,
모든 것이 선물이 된다.

나도 0이었던 적이 있다

30대 중반, 나는 방황했다.
“왜 사는 걸까”라는 질문을 안고.
죽을 뻔한 순간도 두 번 있었다.

그때 내 기대도 0에 가까웠다.
미래를 그릴 수 없었고,
내가 누군가의 아빠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다.**

💡 0에서 시작하면,
1도 기적이 된다.

가정을 일군다는 것

방황하던 시절, 한 가지 분명한 게 있었다.
가정을 일구고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능력이자 사랑이라고 여겼다.
마음속으로 그런 가장들을 존경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범접할 수 없는 삶”을 결심하게 됐다.
늦었지만.

💡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을
늦게라도 시작하는 것.
그게 늦깎이의 의미다.

속세의 구도자

호킹은 우주를 탐구했다.
휠체어에 앉아,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블랙홀과 시간의 비밀을 파고들었다.

나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산에 들어가는 구도자가 아니라,
**속세에서 답을 찾는 구도자.**

기저귀 갈고, 밥 먹이고,
아이와 놀아주고, 아내와 대화하고,
병원 가고, 약 먹고, 일하고.

이 모든 희로애락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중이다.
아직 다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 찾는 중이다.

💡 삶의 의미는 완성되는 게 아니다.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다.

지금도 보너스

만성골수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다시 한번 기대가 흔들렸다.

하지만 호킹의 말이 떠올랐다.
“그 이후의 모든 것은 보너스였다.”

그래, 지금 이 시간도 보너스다.
아이들과 웃는 이 순간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 보너스라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감사해진다.
당연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오늘의 산책을 마치며

호킹은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할 수 있는 일은 항상 있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몸이 느려져도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늦게 시작해도 시작은 시작이다.
0에서 출발해도 1을 향해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보너스 중의 보너스다.

💡 기적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나로부터 시작한다.
오늘, 지금,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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