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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꼭대기에서 연을 날리다

태백산 정상 가족 사진

태백산 정상 표지석 앞 가족 사진

아이들에게 겨울 태백산을 보여주고 싶었다.

만 7살, 5살. 아직 어리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대자연 앞에 서 보는 경험은 빠를수록 좋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것들이 있거든.

눈 덮인 태백산 등산로를 걷는 가족

눈썰매도 타고, 용연동굴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태백산에 올랐다. 2시간이면 올라갈 길을 6시간 걸려서 올라갔다. 아이들 발이 작으니까. 눈길이 미끄러우니까. 쉬고, 눈 만지고, 또 쉬고. 근데 말이야, 그 6시간이 2시간보다 훨씬 좋았다.

그리고 나만의 계획이 하나 있었다.

태백산 꼭대기에서 연을 날리는 거.

솔직히 말하면, 이 발상은 나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 정상에서 연이라니. 근데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면 이런 엉뚱한 생각이 자꾸 나온다.

겨울 산이니까 바람이 세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약했다. 연이 안 뜬다. 뛰어보고, 방향 바꿔보고, 기다려보고. 아이들은 “아빠 왜 안 날아?” 하고, 나는 속으로 ‘제발’ 하고 있었다.

다행히 한두 번, 바람이 도와줬다. 연이 떴다. 잠깐이었지만 아이들이 소리 질렀다. 그 순간, 6시간 올라온 보람이 전부 채워졌다.

태백산 정상에서 날린 연

내려올 때는 힘들어서 칭얼거리더라. 당연하지. 어른도 힘든 겨울 산을 아이들이 올랐으니까. 근데 그게 대단한 거잖아.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점차 사회화되고, 독립심이 생기고, 자기만의 생각을 갖게 되겠지. 그때가 오면 나도 다시 찾아야 한다. 생계가 아니라, 남은 열정을 태울 수 있는 무언가를.

어쩌면 책일 수도 있고. 깊은 산에 오두막 짓고 자연 속에서 감사의 나날을 보내는 삶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여전히 도시 한가운데에서 뭔가 들거운 일을 찾아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습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지금은 아이들의 시간이다.

아이들의 유년기는 신이 부모에게 준 축복의 시간이다. 틀림없다. 근데 그걸 모르고 일에 쫓겨 사는 부모들이 많다는 게 안타깝다.

AI 시대가 오면 많은 게 바뀔 거다. 일이 줄고, 시간이 늘어나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채우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시대. 일론 머스크만이 그 미래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아이들과 산에 오르고, 연을 날리고, 글을 쓴다. 이게 그 시대를 준비하는 나만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태백산 꼭대기에서 연이 떴던 그 몇 초. 아이들은 기억 못 할 수도 있다. 7살, 5살이니까. 근데 몸이 기억하는 것들이 있다. 추운 바람, 아빠 손의 온도, 연이 떴을 때의 함성. 그런 건 기억이 아니라 감각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감각이, 언젠가 아이들을 데려갈 거다.
자기만의 산 꼭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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