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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만지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황학동 풍물시장에 갔다.

둘째가 조형물을 올려다본다
둘째가 조형물을 올려다본다

입구에서 둘째가 검은 조형물을 올려다봤다. 뭔지도 모르면서 한참을 쳐다봤다. 아이들은 원래 그렇다. 이해하기 전에 먼저 느낀다.

아빠, 이거 뭐야?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질문이 쏟아졌다.

“아빠, 이거 뭐야?”
“전화기야.”
“전화기? 버튼이 없는데?”
“옛날엔 이렇게 돌려서 전화했어.”

다이얼 전화기와 라디오
다이얼 전화기와 라디오

첫째는 다이얼을 만져보고 싶어했다. 둘째는 라디오 주파수 표시판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92, 96, 100, 104… 숫자의 의미는 몰라도 뭔가 중요한 거라는 건 느끼는 것 같았다.

옛 TV와 히터
옛 TV와 히터

“아빠, 저 TV 왜 이렇게 생겼어?”
“옛날 TV야. 아빠 어릴 때 저런 거 봤어.”
“진짜? 아빠 진짜 옛날 사람이야?”

그래. 아빠는 옛날 사람이다.

시간이 쌓인 곳

90년대 노트북
90년대 노트북

이건 90년대 노트북이다. 저 두꺼운 몸체, 작은 화면, CD 드라이브. 나는 저런 걸로 리포트를 썼다. 아이들에게는 화석 같은 물건이다.

근데 말이야, 아이들은 이해 못 해도 느끼더라.

“아빠, 여기 물건들 다 옛날 거야?”
“응.”
“왜 버리지 않았어?”
“누군가한텐 소중한 거니까.”

물건을 구경하는 아이들
물건을 구경하는 아이들

첫째가 말이 많았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이건 어떻게 쓰는 거야. 둘째도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예상 이상의 수확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보는 것을 즐겼다.

과거와 공존하는 지금

색색의 물건을 구경하는 남매
색색의 물건을 구경하는 남매

나는 이 시간들을 경험했다. 다이얼 전화기로 전화 걸어봤고, 브라운관 TV로 만화 봤고, 두꺼운 노트북으로 숙제했다.

아이들은 그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과거의 한 순간과 함께하고 있었다. 별빛이 수천 년 전의 빛이듯, 이 물건들도 수십 년 전의 시간이다. 지금 여기서 그 시간을 만지고 있는 거다.

지금을 산다는 건 뭘까.

결국 과거를 향유하며 미래를 얘기하는 공존의 순간들 아닐까.

청계천 다리 위에서

청계천 다리 위 가족
청계천 다리 위 가족

풍물시장을 나와 청계천을 걸었다.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뒤로는 고층 빌딩이, 아래로는 복원된 하천이 흐른다.

이것도 시간이다. 복개됐던 하천이 다시 열렸다. 숨겨졌던 과거가 다시 드러났다.

손잡은 두 아이
손잡은 두 아이

둘째가 첫째 손을 잡았다. 둘이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봤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장면이 오늘의 수확이다.


아이들에게 시간의 정서를 심어주고 싶었다. 과거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지금이 어디서 왔는지.

근데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가르친 건 나였는데, 배운 건 나였다.

아이들은 과거를 만졌고, 나는 그 장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과거가 된다는 것. 이 사진들도 언젠가 풍물시장에 놓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지금을 더 잘 살아야겠다.

오늘 아이들 손 한 번 더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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