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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게 아니야. 함께 가는 거야.

느린 게 아니야. 함께 가는 거야.

눈시울이 젖었다.

자격증 프린팅해달라는 친구의 부탁.

별거 아닌 줄 알았다.


숫자 두 개

파일을 열었다.

국가기술자격 취득사항 확인서.

이름, 주소, 자격종목…

그러다 숫자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1999.10.25

2025.12.24


26년.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친구에게는 아들이 있다.

장애가 있는 아들.


아인슈타인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말이 늦었고,
선생님은 “이 아이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말했다.

“넌 다른 아이들과 다를 뿐이야. 느린 게 아니라.”


친구는 26년간 아들 곁에 있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54세에 다시 도전해서 합격했다.


그냥 프린트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격증 위에 편지를 담기로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말.


아들아,

내게는 아들이 있단다~

26년의 시간 중 많은 시간
너와 함께 해서 좋았다~

아빠는 너의 걸음에 맞추려
요놈 따는데 26년의 시간이 걸렸구나 ^ ^

오십 중반이면 청춘이지? ^ ^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소풍가듯 천천히
천천히
함께 걸어보자구나!

사랑한다, 아들~~~


손잡고 걷는 실루엣

포토샵을 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손잡고 걷는 실루엣을 그렸다.

“함께 걸어보자구나”

그 말이 그대로 보이게.

합격일자 두 개를 원형으로 강조했다.

1999 → 2025.

26년의 간격이 한눈에 보이게.


프린트 버튼을 누르는 순간

투명 아크릴 뒷면에 인쇄.

25cm x 20cm.

프린트 버튼을 누르는데 손이 떨렸다.

괜히.


완성

자격증이 아니었다.

26년의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아들을 향한 편지였다.


나도 아이를 가질 때 생각했다.

“건강하기만 해다오.”

손가락이 열 개인지, 발가락이 열 개인지.

그런 걱정을 하며 육아일기를 썼던 기억.


친구에 비해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그래서 나는 기부를 생활화하고 있다.

건강하게 태어난 건 축복이니까.

그 축복을 나눌 수 있다면 거르지 말아야지.


늦깎이연구소가 하고 싶은 일

상품을 파는 게 아니다.

이야기를 담아주는 것.


숫자 두 개에서 26년을 읽어내는 것.

그 무게를 물건에 담아주는 것.


느린 게 아니야.

함께 가는 거야.


— 늦깎이연구소, 202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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