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나도 도와줄까?”
아이들과 한 첫 프로젝트
작년 여름이었다.
Upwork이라는 해외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일을 하나 받았다. 한국어 음성 녹음. 75분짜리. $18.
$18이면 만 원도 안 되는 돈이다.
그래도 처음이었다. 해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이 설렜다.
녹음에 아이 목소리가 필요했다. 네 살 둘째가 “나도 할래!” 했고, 여섯 살 첫째도 따라왔다.
다른 방에 격리해서 조용히 녹음했다.
아이들은 진지했다. 아빠 일을 돕는다는 게 신나 보였다.
나도 진지했다. 아이들과 함께 성심을 다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제출했다.
돌아온 답
경고였다.
“미성년자 참여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를 제안한 건 플랫폼이었다. 아이 목소리가 필요한 녹음을 추천해놓고, 막상 아이가 참여하니까 페널티를 주겠다고 했다.
화가 났다.
그런데 더 속상한 건 다른 거였다.
아이들한테 “고마워” 대신 “미안해”를 해야 했다.
아빠 도와주겠다고 다른 방에서 열심히 녹음한 아이들.
그 얼굴을 보기가 미안했다.
$18도 안 받았다. 짜증나서 앱을 지웠다.
1년 동안 안 열었다
Upwork에서 메일이 계속 왔다.
“Your profile looks like a great match…”
안 봤다.
볼 생각도 없었다.
그 대신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밤 11시에 아이들 재우고, 새벽 2시까지 코딩했다.
Rails를 배웠다. AI를 붙였다. 앱을 만들었다.
Choviet이라는 커뮤니티 앱을 만들었다. 혼자서. iOS랑 Android 앱스토어에 제출했다.
HealthNote라는 건강 앱을 만들었다. 시니어를 위한 음성 입력 AI.
Silentia라는 AI 엔진을 만들었다. “언제 침묵할지 판단하는” 엔진. 정부 지원금 1.5억 원짜리에 지원했다.
쇼핑몰을 열었다. DTF 프린터로 굿즈를 찍었다.
블로그를 147편 썼다.
1년 6개월 동안 7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매출은 0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시 열었다
대출 상환일이 다가왔다.
쇼핑몰 매출은 아직 0원이고, 매달 100만 원은 나가야 했다.
그때 문득 생각났다.
내가 지금 가진 게 뭐지?
Ruby. Python. Claude. AI 에이전트. 자동화 파이프라인.
1년 전에는 없던 것들.
Upwork을 다시 열었다.
1년 만이었다.
다른 사람의 프로필
프로필을 봤다. 1년 전 내가 쓴 거.
“I build AI-powered mini apps using Python and Streamlit.”
mini apps.
지금의 나를 보면 웃긴다.
커뮤니티 플랫폼, 헬스케어 앱, AI 판단 엔진, 자동화 파이프라인.
전부 혼자 설계하고 혼자 배포했다.
그건 “mini”가 아니었다.
프로필을 지우고 다시 썼다.
“I build production AI agents and full-stack applications — solo.
In the past 18 months, I’ve shipped 7 products as a one-person team.”
Claude한테 물었다. “이 소개글 어때?”
“production이라는 단어가 핵심이에요. mini를 지운 게 맞습니다.”
맞다. 나는 더 이상 mini가 아니다.
시급을 바꿨다
$20이 적혀 있었다. 1년 전 내가 정한 가격.
$20이면 클라이언트가 “싼 개발자”로 본다. 좋은 프로젝트가 안 온다.
$55로 바꿨다.
손이 떨렸다. 솔직히.
‘내가 $55를 받을 자격이 있나?’
근데 Claude한테 Upwork 시장을 조사해달라고 했더니, AI 에이전트 개발자 평균이 $50-100이었다.
나는 Claude Code로 매일 7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55가 오히려 겸손한 가격이었다.
태스크당 $200
프로필을 고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초대가 있었다.
Labelbox. 샌프란시스코의 AI 회사.
AI 모델이 생성한 코드를 평가하는 일. Ruby와 Python 경험자를 찾고 있었다.
태스크당 $200-300. 예상 시급 $90.
1년 전: 아이들과 녹음해서 $18.
오늘: AI 코드를 평가해서 $200.
같은 플랫폼이다.
다른 건 나였다.
프로포절을 쓰고 제출했다. Claude가 도와줬다.
읽지 않았던 메시지
프로필을 고치다가, 메시지함을 열었다.
1년 전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Praveen Kumar. 그 녹음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
“Just raise the dispute so I can release the payment”
그가 돈을 보내려고 했던 거였다.
내가 화나서 안 본 사이에.
그 뒤에 또 메시지가 와 있었다.
“Hello”
2025년 7월 24일. 10개월 전.
아무도 안 읽은 Hello.
미안했던 건 플랫폼이지 사람이 아니었다
Praveen은 좋은 사람이었다.
내 화는 이 사람한테 갈 게 아니었다.
답장을 썼다.
“네 살, 여섯 살 아이들이 아빠를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녹음했습니다. 돌아온 게 경고여서 너무 속상해서 Upwork을 지웠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메시지를 봅니다.”
보내고 나니까 마음이 좀 풀렸다.
$18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풀리지 않았던 마음이 풀린 거였다.
AI가 바꾼 것
1년 전의 나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지금의 나는 “AI와 함께 만드는 사람”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달라진 건 나이가 아니다. 학력이 아니다. 체력이 아니다.
AI와 함께 1년을 보냈다는 것.
매일 밤 Claude한테 물었다. “이거 어떻게 해?” “이게 왜 안 돼?” “더 나은 방법 있어?”
그게 쌓여서 7개 프로젝트가 됐다.
그 7개 프로젝트가 쌓여서 시급 $90짜리 개발자가 됐다.
아이들은 기억할까
그때 네 살이던 아이는 지금 다섯 살이다.
녹음했던 거 기억 안 할 거다.
Upwork 경고 같은 건 더더욱 모른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건 아마 이런 거다.
“아빠가 밤에 컴퓨터 하는 거.”
“아빠가 ‘됐다!’ 하고 소리치는 거.”
“아빠가 뭔가를 계속 만드는 거.”
그게 맞다.
아빠는 계속 만들고 있다.
녹음 알바를 하던 그 아빠가
AI 개발자가 돼서
다시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당신도 지운 앱이 있나요
혹시 당신도 어딘가에서 속상했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화나서 지운 앱이 있을 수 있다.
“다시는 안 해” 하고 닫아버린 문이 있을 수 있다.
근데 그 문 뒤에서 당신은 계속 자라고 있었을 거다.
1년 전과 지금의 당신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다시 열어봐.
나도 그랬다.
$18짜리 녹음 알바를 하던 52세 만성골수백혈병 환자가
AI와 함께 1년을 보내고
다시 그 문을 열었다.
이번엔 다른 사람으로.
FIDES TAMEN — 그럼에도 신뢰한다.
Bloom late, but stro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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