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주는 AI 말고, 길을 보여주는 AI
의사결정 분석은 60년 된 학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어제 한 결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해주지 못한다.
지난 글에서 나는 결정의 맥락이 매일 휘발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결정을 분석하는 엔진을 만들기로 했다고.
근데 글 쓰면서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이게 이미 있는 거 아닐까.”
그래서 며칠을 들여 학술 문헌을 뒤졌다.
결과는 — 있긴 있었다. 60년 동안 다섯 갈래로.
근데 비어 있는 자리도 분명히 있었다.
그 빈자리 얘기를 하려고 한다.
성찰 — 다섯 갈래의 의사결정 학문
| 전통 | 무엇을 한다 |
|---|---|
| 고전 의사결정 분석 (Howard, 1966~) | 효용 × 확률 → 최적 선택 처방 |
| 행동 결정 이론 (Kahneman, Tversky) | 사람은 어떻게 틀리는가 |
| 자연주의 의사결정 (Klein, NDM) | 전문가는 비교 안 한다, 패턴을 알아본다 |
| 과정 추적 (think-aloud, eye tracking) | 결정 과정을 실험실에서 측정 |
| 임상 결정 지원 (PDA, Stacey & Légaré) | 의사-환자 합동 결정 도구 |
각각 강력한 발견을 했다.
Klein은 “실험실에서는 배울 게 거의 없다, 진짜 결정은 현장에서 일어난다” 고 말했다.
Annie Duke는 “resulting” 이라는 말로 결과로 결정의 질을 평가하는 오류를 짚었다.
Kahneman과 Tversky는 우리 머릿속의 함정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근데 이상한 게 있었다.
이 60년 동안 내 같은 사람을 위한 도구는 거의 없었다.
연구는 실험실에서 했고, 도구는 병원에서 만들었고, 통찰은 책에 들어갔다.
1인 운영자가 매일 30~50건의 결정을 어떻게 박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 어디에도 없었다.
믿음 — 비어 있는 자리는 분명히 있다
학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사실이 몇 개 있다.
하나, 결과로 결정을 평가하면 안 된다. 운이 좋아 잘 풀린 나쁜 결정과, 운이 나빠 실패한 좋은 결정을 사람은 구별 못한다.
둘, 그때 가능했던 다른 선택지가 보존되어야 학습이 일어난다. 신경과학 연구(Neuron, 2018)는 counterfactual 추론이 학습의 기반이라고 보였다. “if I had chosen differently”가 사라지면 다음 결정의 prior도 갱신되지 않는다.
셋, 사후 회고는 본래 왜곡된다. 결과를 알고 나면 우리는 “그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기억을 다시 쓴다. 122개 연구의 메타분석이 이걸 확인했다. 유일한 방어선은 동시 기록이다.
넷, 반성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은 다르다. Schön의 Reflective Practitioner(1983) 이후 40년의 연구가 일관되게 보여줬다. 반성은 전문성을 만든다. 그런데 반성에는 시간과 인지 자원이 든다.
이 네 가지가 모두 가리키는 빈자리가 있다.
“보통 사람이, 일상에서, 정답이 없는 결정을, 시간 부담 없이 박제하고, 사후에 맥락을 잃지 않은 채 돌아볼 수 있는 도구”
이게 학술적으로 명백히 비어 있는 자리다.
병원의 PDA는 단발 의료 결정에만 작동한다.
NDM은 연구 방법론이지 일상 도구가 아니다.
quantified-self 도구들은 수집은 잘하지만 반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받았다 (Rapp & Cena, 2016).
이 빈자리를 채우려면 — 답을 주지 않는 도구가 필요했다.
욕망 — 침묵과 실타래, 두 엔진의 합주
여기서 두 번째 발견이 있었다.
이 빈자리를 이미 옆에서 채우려고 하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나의 다른 프로젝트, Silentia.
Silentia는 말하지 않는 기술이다.
“더 많이 말할수록 좋은 시스템은 아니다” 가 출발점.
기본 상태가 SILENT — 말하는 게 예외고, 말 안 하는 게 정상.
어떤 알림을 보낼지가 아니라, 무엇을 침묵할지를 결정하는 엔진.
Silentia는 출력 게이트를 만든다.
근데 게이트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분석하는 레이어가 또 필요하다.
그래서 Ariadne를 만든다.
Silentia (침묵 엔진) — 언제 말할까
Ariadne (실타래 엔진) — 어떻게 길을 되짚을까
두 엔진은 합주한다.
Ariadne가 결정의 맥락을 박제하고, 패턴을 알아챈다.
Silentia가 그 패턴을 지금 사용자에게 보여줄지 말지를 결정한다.
Ariadne는 Silentia를 우회할 수 없다.
Silentia가 침묵이라고 결정하면, Ariadne의 어떤 통찰도 사용자에게 닿지 않는다.
이게 두 엔진의 위계다.
분석은 자유롭게 일어나되, 출력은 엄격히 통제된다.
이건 다른 어떤 personal informatics 도구도 채택하지 않은 구조다.
대부분의 자기 추적 도구는 알림으로 사용자를 괴롭히다 결국 사용자가 떠난다 (이걸 학자들은 lapsing이라고 부른다).
Silentia + Ariadne는 그걸 구조적으로 막는다.
기록으로 남길 문장
답을 주는 도구는 이미 많다.
그런데 답을 주지 않는 도구는, 의외로 거의 없다.
내가 만들고 싶은 건, 내가 1년 후에 어떻게 그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이 나에게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 거울은 그저 —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정직하게 비춰주면 된다.
이해는 변화의 전제다.
변화 자체는 사용자의 몫이고.
이 문장이 NDM 60년, outcome bias 40년, reflective practice 40년의 학술 결론을 한 줄로 압축한다.
그리고 늦깎이연구소의 모든 프로젝트가 결국 이 한 문장 위에 서 있다.
다음 글에서는 그래서 지금 ariadne 폴더에 코드가 몇 줄 있는지를 적을 거다.
스포일러: 0줄이다. 그리고 그게 의도다.
2026.04.11 — 늦깎이 개발일지 · Ariadne 시리즈 2편
↘ 첫 성취 기념로 보러가기 · 늦깎이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