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을 열어놓고 문득 깨달았다.
이 가게가 왜 ‘늦깎이연구소’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을.
그냥 인쇄 대행이었다
티셔츠에 그림 넣어드립니다.
모자에 글씨 새겨드립니다.
아크릴에 사진 박아드립니다.
그게 전부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아무 인쇄소나 할 수 있는 일이야. DTF 프린터 사서 유튜브 보고 따라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근데 그게 왜 ‘늦깎이연구소’지?
늦게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곳이라면서, 정작 파는 건 그냥 주문제작 인쇄물이었다.
간판만 달랑 걸어놓은 거였어.
멈추니까 보였다
2024년 11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택배일을 그만뒀다.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에 쇼핑몰을 다시 봤다.
“이게 뭐지?”
상품 목록을 훑어봤다. 아이그림 티셔츠, 포토블록, 레터링 모자…
하나하나는 괜찮은 상품이야. 근데 왜 이것들이 한 가게에 있는지 설명이 안 됐다. 그냥 “내가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모아놓은 거였어.
고객 입장에선 “그래서 여기가 뭐 하는 데?”였을 거야.
기록의 보관소
생각을 바꿨다.
인쇄 대행이 아니라, 기록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왜 티셔츠에 그림을 넣을까?
왜 아크릴에 손글씨를 새길까?
왜 모자에 문구를 박을까?
잊고 싶지 않아서.
아이가 처음 그린 그림.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글씨.
내가 처음 뭔가를 해냈던 날.
그걸 어딘가에 남기고 싶은 거야.
사라지지 않게.
그러니까 이건 인쇄가 아니라 기록이야.
4개의 카테고리
그래서 상품을 다시 정리했다.
늦깎이 연대표 —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
가족 유산 기록 — 가족의 손글씨, 레시피, 가훈
첫 성취 기념 — 처음 해낸 그 순간
두 문화의 기록 — 두 언어, 두 나라, 하나의 가족
같은 티셔츠야. 같은 아크릴 블록이야.
근데 이제는 “왜 이걸 만드는지”가 보여.
아직 다 안 바꿨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쇼핑몰 들어가면 아직 엉망이야. 리브랜딩 중이거든.
상품 상세페이지도 다 못 바꿨고, 디자인도 손봐야 하고, 마스코트도 새로 만들었는데 아직 안 넣었어.
근데 방향은 잡혔어.
“여기는 기록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인쇄 대행 말고, 사람들의 시간을 담는 곳.
다음 글에서 4개의 카테고리가 각각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써볼게.
그리고 그 다음엔, 이 모든 기록을 지키는 친구를 소개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

